SF영화사 관점에서 <스타워즈(Starwars, 1977~)>는 공화주의와 전제군주, 선과 악의 대립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우주 전쟁이란 대서사의 시작을 알렸고, <매트릭스(The Matrix, 1999~2003)>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과 정체성 혼란’의 시대를 열었고, <인셉션(Inception, 2010)>에서는 ‘장자’가 던진 질문을 곱씹게 만들었다. <인셉션>이 준 충격은 <매트릭스> 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근래 들어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일반인이 다른 세계로 호출 당하는 ‘이세계물(異世界物)’ 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라는 인류 문명 종말 이 후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졌다. ‘이세계물(異世界物)’ 은 대부분 RPG 게임을 원형으로 하는 것이 많은데 대부분 주인공이 다수 여성의 사랑을 받고(하렘), 최대 능력을 갖춘 실력자로서 이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이 되는 식이라 클리셰의 반복에 매우 식상함을 느낀다. 일본 라이트 노벨 계열에서 이런 식의 이세계물이 유행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는데 현실 세계에서 겪는 좌절과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이세계(異世界)를 열망하기에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나츠메와 카부라기

<데카당스> 는 네플릭스 추천으로 우연히 본 작품이다. 이세계물 홍수 속에서 간만에 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전체 12화로 하루에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분량이 짧다 보니 나래이터의 간단 설명만으로 전체 이야기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어쨌든 다 보고 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되새김을 해 보다 보니 생각할게 많은 작품이었다. 일부 내용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은 주의하기 바란다.

‘데카당스’, 제목이 의미하는 것

데카당스‘.

뜻을 찾아 보니 프랑스어 ‘퇴폐‘ 를 의미하고, 예술 용어 설명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술적 활동이 그 정상적인 기능을 잃고 형식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자극적 향락이나 이상한 감수성으로 빠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예술지식백과

어렵다. 삶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사이보그화한 인간들의 ‘자극적 향락’ 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락의 대상이 ‘보통의 인간’ 이란 측면에서의 ‘윤리적인 타락’ 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작품 속 세상이 다루고 있는 것들이 과연 상상속 세상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향락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나?

현실과 가상 세계, 무엇이 현실일까?

<매트릭스>, <인셉션> 과 같이 현실과 가상 세계가 있는 세상이 배경이다. 사이보그와 괴물이 나오고, 보통 인간들은 이동 요새에서 적성에 따른 직업을 얻고, 삶을 이어간다. 마치 <멋진 신세계> 같기도 하다. 주인공 나츠메의 현실과 사이보그인 카부라기의 힌실은 다르다. 카부라기의 가상 세계가 나츠메에게는 현실이다. 카부라기 동료들은 나츠메와 같은 보통의 인간을 가상 현실 속 인물로 대한다. 가상 세계에서 죽는 것은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츠메와 그 동료는 실제로 죽을 수 있다. 게임 플레이어는 아무 영향이 없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현실이 달라진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현실일까 가상 세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