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네 삶의 방식이란 것이 항상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에 밝다 보니 당연히 따라오는 질문입니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방문 선교사에게 믿으면 뭐가 좋은지를 묻는 식입니다. 한 때, 화가 난 제게 친구가 물었습니다.

“명상한다며…”

명상한다고 화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맘대로 조정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혹자들은 도를 닦으면 모두 ‘성인(聖人)’ 이 되는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편견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성인(成人)’이 될 수는 있습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감정은 다스릴 수 없습니다. 다스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다스리려고 하니 고통이 따릅니다.  화가 나고, 분노가 차오르며 슬픔이 휘몰아칩니다. 순간입니다. 명상 전에는 그저 이런 강한 감정이 몰려 오면 숨기 바쁩니다. 시간이 어서 지나기만 기다립니다. 마치, 가정 폭력 공인 광고를 보는 것 같습니다.

명상은 화를 다스리지 않습니다. 다스리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화와 함께 합니다.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아 어서 가다오 기도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지나갈 것을 알기에 감정과 함께 차분하게 기다립니다. 어느 새 안녕 인사도 없이 사라집니다.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인간이 막을 수 없습니다. 자연 재해로 인한 충격파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똑같습니다. 명상은 안전 장치입니다. 감정이나 몸의 순간 순간을 관찰하고 지켜 봅니다. 감정이나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강한 충격파가 올 것에 대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합니다. 준비하면 충격이 줄어 듭니다.

명상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하실지 모릅니다. 명상은 상시로 깨어서 하는 행위입니다. 처음에 일정한 형식을 가진 행위로서 시작하니 행위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일상이 명상입니다. 도를 억지로 닦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장소를 가려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이 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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